어제 쓴 "나도 어딘가 민원을 넣고 싶을 때가 있다" 에 이은 글.
오늘 내원한 환자는 1주일 마다 진통제를 상습적으로 주사를 맞아온 분이다. 작년에 오랜 설득을 통해 다시는 무조건 주사놓아 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가끔은 만취 상태로 들어와 불평을 하기도 하고, 선생 학교어디 나왔냐면서 (주사의 필요성에 대해 내가 무지한 것이라는 주장을 위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행동을 취하는 내 환자 중 몇 안되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환자다.
2년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 이제 아무리 시골이라고 하더라도 의료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역 사회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의료소비,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열정에 비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결과가 안타까울 뿐이다.
왜곡된 시각으로 의사를 바라보고, 또 잘못된 의료에 대한 인식으로 무조건 주사나 약을 줘야한다고 이야기하는 환자들을 대할 때 마다 '나는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하는가?' 란 생각이 들뿐이다. 게다가 잘 설득했다고 생각했던 환자가 다른 곳에 가서 나에 대해 험담을 하고 오히려 민원을 제기할 때 '무지에서 온 부끄러운 짓'임을 모르는 그들을 동정해야하는지 비난해야하는지 혼돈스럽다.
게다가 그런 환자들이 많아질 수록 받는 스트레스는 고혈압 환자인 나에게 꽤 큰 부담이다. 혈압은 팍팍 오르고 심박은 미치게 빨리 뛴다. 오늘 그 환자를 볼 때에도 그랬다.
환자는 일해서 피곤하고 딱 꼬집어 아픈 곳은 없지만 삭신이 쑤시니 약을 달라고 하였다. 이전 부터 진통제에 대해 충분한 설명은 해온 터지만 다시 한번 이야기 하고 통증이 심할 경우에 복용할 것을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충분한 휴식을 먼저 해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도 물론 했다. 환자는 양약은 이미 오랬동안 많이 먹었기에 주사가 아니면 듣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많은 설명을 했지만 이 믿음은 변하지 않고 있다.
진료실에 나가 약을 받은 환자는 우리 직원 앞에서 당당하게 두봉지를 한꺼번에 뜯어 먹는다. 당연히 깜짝 놀란 직원이 두 봉지 드시면 안된다고 말했고...
"난 양약 많이 먹어서 약으로는 안 났는다니까!!" (버럭)
환자는 그렇게 나에게 항의를 한 것이다. 사람을 마주하는 직업은 언제나 만족/불만족의 평에 의해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객의 불만족을 개선함으로써 기업이나 또는 병원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평을 받게 되고 더 나은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기에 고객 눈높이에서의 직원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기업뿐 아니라 병원들도 이러한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나역시 그러한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왔고, 환자들에게 그런 부분에 있어 불만을 야기한 적은 없다. 대학병원 전공의 시절에도 친절한 의사로 몇차례 상도 받았고, 이 지역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서도 직, 간접적인 칭송(?)을 들으며 사는 나름대로 친절한 의사라고 (자랑같아 민망스럽지만) 스스로 생각한다. 그래도 내 입으로 이야기한 것이니 절반 평가 절하해서 보통의 의사라고 하자.
기업에서도 마찬가지고 병원이란 조직에서도 환자의 민원에 대해 타당한 것인가 내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자칫 섯부른 행정조치는 조직원이 조직에 가진 충성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내부 인트라넷을 통한 공개 망신은 모욕감마저 들게 된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나 보건소에 공무원으로써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고객만 있고 자기 조직의 직원은 없다는 것이다. 이용자의 권리와 상충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나 환자등의 이용자의 불평을 해결함과 동시에 냉정한 상황 분석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고객의 무리하고 잘못된 요구에 대해 조직원을 감쌀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민원이 생기면... 여러 모로 안좋을 겁니다."
어제 회의에 참석했던 직원들은 협박(?) 아닌 협박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얼마전 지소에 새로 배치되어 블랙리스트에 해당되는 유별난 환자인 줄 미처 몰랐던 우리 직원은 오늘 온 환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저런 환자의 요구도 들어주지 않아 민원이 생기면 안된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 않나요... 휴..."
내 말이.
양질의 구성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불량고객, 아니 불량환자를 해고할 수는 없나 모르겠다. 아니, 요즘 같은 험한 시대에 의사 입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살짝 꼬리 내려야지. 농으로 한 이야깁니다. 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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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House 가 갑자기 생각나는데요. Dr. House 는 기본적으로 모든 환자는 "불량"하다는 전제로 대하지요. Dr. House 는 사실 하얀거탑 같은데 나오는 "기술자 모델"의 의사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얼마간 그의 독특한 "환자론"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자기 몸은 자기 것이고 자기가 잘 안다"는 아집과 소유욕은 대개 의사를 "처방전"발급 공무원이나 "병 고치는" 정비사 수준으로 대하는 경향을 만들어내기 쉽상이고 1회적인 만남에서 병은 함께 고쳐나가는 협업 과정이란 사실을 환자들이 이해하긴 어려움이 있기 때문인 것도 같구요. 뭐 저부터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
2008/03/26 19:01아.. 그리고 병원 조직 말씀하신 부분은 제 생각엔, 오히려 조직된 사업체화 되었기 때문에 더 문제적이지 않을까도 싶은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의사를 피고용자 혹은 직원으로만 사고하는 경향에 대한 대책도 필요할 것 같네요. 전에 아시아나 조종사 파업할때 우리사회가 아직 고소득 전문직의 근로조건에 색안경만 끼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역설적으로는 이제 고소득 전문직도 그 나름의 문제들을 일터에서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 와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무엇보다도 급격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화 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이 "분절화"되어 서로 소통할 방식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에 새로운 언로를 만들어내는 것이 급선무이겠지요.
헬스로그 같은 것이 그런 훌륭한 기획이 아닐까도 싶네요.
기사는 저도 잘 읽었습니다. ^^
앗~ 방문까지 ~! 감사합니다. 헬스로그도 아시고 계셨군요. 쑥스럽습니다. 소통의 단절... 이상하지요. 기술적으로 소통의 방법들은 더 많아져가는데 단절이 심해져 가는 현 사회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지 가끔 난감합니다.
2008/03/26 20:54좋은 댓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2008/03/27 00:41어디가나 있는 애환이겠지요 ^^ 그냥 푸념입니다. 저도 두리뭉실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8/03/27 09:29오늘 유난히 심난하네요.
2008/04/04 04:38불량환자 저도 많이 보고 있지만 저도 민원으로 평가를 받는다고 하는데다.
병원조차도 의사를 피고용인으로 밖에 생각치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니..흑흑.